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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의 동포, 나의 형제자매에게

조회수 24 추천수 0 2019.09.04 09:43:31


[기고] 나의 동포, 나의 형제자매에게2019 일제 강제징용노동자 추모제 참가기
  • 박소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교육부장
  • 승인 2019.09.02 13:09
  • 댓글 0
우키시마호추모식에서 추모하고 있는 박소리(필자).

부끄러웠다. 나는 그동안 일본으로부터 탄압받았던 노동자 선배들의 삶에 대해, 그리고 오늘도 계속되는 투쟁에 대해 이만큼 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부끄럽게도 없었다. 그저 역사의 일부분이었고, 타인의 고통이었을 뿐이다. 참가기를 쓰자며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도 그저 부끄럽다. 2박 3일, 짧은 시간 동안 알면 얼마나 알았다고. 그런데도 이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은, 또 다른 박소리를 우리 동포들에게로 안내하기 위함이다.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글은 역사가 아니라 현재이며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아픔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은 2년째 우토로 마을을 방문하고 있다. 사진은 방문 당시 창고에 직접 남긴 그림이다. 사진=필자제공

우토로 마을. 일제 강점기에 교토 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되었다가 해방이 되면서 방치된 우토로 마을, 그리고 마을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자위대.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인권 보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있으면서, 바로 옆에는 해서는 안 될 군사문제가 자행되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찌 이리도 모순적이고 이질적인가. 그곳에서 우리 노동자 선배들은 상하수도가 없어 우물을 파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빗물을 퍼내며 갖은 탄압을 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2011년 정부와 시민단체의 지원으로 마을 부지를 매입하고 시영주택이라는 공동거주 아파트가 들어왔다. 하지만 마을의 1세대이신 강경남 할머니께서는 시영주택에 들어가신 지 한 달도 안 되어 본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몸이 편한 신축건물이 아니라, 마음이 편한 ‘내 마을, 내 집’인 것이다. 그 소박한 희망이 무색하게 지금도 마을은 철거되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바라건대, 그런데도 우리의 마음 한켠에는 이 작은 마을이, 그리고 그곳에서 평범한 삶을 위해 싸우고 계시는 분들이 살아 숨쉬기를.

교토 조선학교의 전경. 운동장에서는 학생들이 한창 축구를 하고 있다. 사진=필자제공

조선학교. 해방 후 시작한 ‘국어강습소’는 빼앗긴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 역사를 찾고 귀국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8년, 조선학교는 일본 전국에 64개교가 남아 유,초,중,고,대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초기 4만 명에 달하던 학생은 지자체의 보조금 동결, 정부의 제도적 차별, 지역주민들의 탄압 등으로 현재 약 7,000명으로 줄었다. 그저 조국에 대한 마음 하나 지키려 했을 뿐인데, 감당해야 할 벽은 너무나도 컸다. 폐쇄령, 비인가, 교통할인율 차별, 전국 학생대회 출전 자격 박탈, 대학수험자격 박탈, 토지 재판, 시민들의 습격까지. 특히 최근 한국과 일본의 대립적인 정세로 인해 이번 방문에 대해서 우리 또한 걱정이 컸는데, 교토 조선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이것 또한 넘어야 할 산”이라고 표현해주시니 도리어 위로를 받았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간절하게 ‘우리의 것’을 지키고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분들이다. 그 단단한 마음이 더 갈라지고 깨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기념관에서 광산 입구로 향하는 길에 있는 노동자 상. 실제 징용 노동의 현장에 세워져서인지 눈빛이나 표정이 더욱 굳건해 보인다. 사진=필자제공

단바 망간 광산 기념관. 일본 교토 단바의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망간 광산. 폭과 높이가 50cm도 안 되는 그곳에서 우리의 선배 노동자들은 100kg이 넘는 망간을 지고 다녔다. 가혹한 노동, 저임금, 미세한 돌가루에 의한 질병과 죽음. 그들의 억울함을 남기고 죽음을 기리기 위해 1989년, 3년의 준비 끝에 당시 광산의 노동자였던 고 이정호(1995년 작고) 씨에 의해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현재는 진폐증을 앓다 떠나신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 이용식 씨가 지켜나가고 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방문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에 안타까움보다는 답답함이 컸다.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노동자상을 세운 이곳이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문을 닫는다면- 문득 ‘파업가’의 한 소절이 생각났다. “흩어지면 죽는다” 뭉쳐야 할 때이다. 또한, 뭉쳐서, 고민보다는 행동할 시점이다. 내년 이맘때쯤 그곳 역사의 땅 위에 다시 서 있을 우리를 떠올리며.

추모제는 사고가 있던 지점 바로 앞에서 이루어진다. 추모제 현장에 활짝 피어있던 무궁화다. 사진=필자제공

우키시마마루 추모제. 매년 8월 24일이 되면 마이즈루 시민들은 두 개의 섬머리가 보이는 바닷가로 모여든다. 1945년 해방 직후인 8월 24일, 마이즈루항 근처 깊은 바다로 가라앉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함이다. 그날 ‘우키시마마루호’에는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설렘과 희망에 가득 차 있던 강제징용 한인 수천 명이 있었다. 그리고 저녁 5시,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배가 V자로 꺾인 채 침몰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아비규환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떠나가신 분들의 넋과 남은 사람들의 한을 담은 꽃 한 송이를 바다에 던지는 손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추모제 정리 후 인사를 나누며 손을 마주 잡았을 때, 이번에는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 손의 주름은 점점 늘어갈 텐데 나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작은 도움에도 감사를 말하는 그 진실한 눈빛들은, 언제고 이곳의 아픔과 간절함을 떠올리게 할 것 같다.

동포, 형제자매. 같은 민족끼리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를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정 내내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에 순간순간 마음이 괴롭기까지 했다. 나는 왜 몰랐으며, 알게 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한없이 막막했다. 나에게 던져진 부채감과 눈앞에 놓인 큰 숙제가 슬슬 부담으로 느껴질 때마다 메모해두었던 글을 꺼내 읽었다. 첫날 ‘코리아 NGO센터’ 곽진웅 대표께서 하신 말씀이다.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까지 싸우고 있다, 용기 있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크지도 않거니와, 해야 할 일도 크지 않았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로 기억할 것인가 나의 형제자매로 기억할 것인가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하느냐는 절로 따라오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곽진웅 대표의 말을 빌려, 나 역시 우리 동포들의 존재가 안타까움이 아니라 함께 손잡고 투쟁하는 형제자매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언젠가 읽은 책에 이런 글이 있었다. ‘역사는 기억 투쟁이다.’ 동포들의 투쟁 길에 우리 역시 그들의 형제자매로 기억되기를, 그리고 그 투쟁에서 승리하는 날을 맞이하기를, 그때는 꼭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기를 바란다.

박소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교육부장  kct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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